
60대인 나에게 한 게임을 끝내고 잠시 쉬는 시간, 한 후배가 물었습니다.
“형님은 축구가 왜 그렇게 즐거우세요?”
60대 축구는 내게 단순히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과는 조금 다릅니다. 현재 나이 62세, 주로 20~30대 선수들과 경기를 하고 제 포지션은 센터백입니다.
그날 후배의 질문을 듣고 문득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축구는 왜 아직도 즐거운가?
1. 60대 축구, 젊은 선수들과 붙어도 밀리지 않는다는 확인
이 이유가 가장 클 것 같습니다. 상대는 주로 20~30대인데, 그들과 같은 경기장에서 25분씩 3~4 경기를 뛰면서 센터백으로 버텨냅니다. ‘내가 아직 이 경기 안에 있다’는 느낌이죠. 단순한 체력의 확인보다 현재의 나 자신에 대한 확인에 가깝습니다.
2. 60대 축구, 내가 뒤에 있으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느낌
센터백의 재미는 골을 넣는 쾌감과 상당히 다릅니다. 상대 공격수가 계속 들어오는데 막아내고, 네 경기를 해서 실점이 0~2골 정도라면 경기 후에 남는 만족감이 큽니다. 특히 실점이 자신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겠죠. ‘오늘도 내가 내 자리를 지켰다.’ 이 느낌이 상당히 클 것 같습니다.
3. 속도가 아니라 판단으로 젊음을 이기는 순간

62세가 25세의 순간 스피드를 이기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공격수가 어디로 들어올지 먼저 알고 한두 걸음 앞서 움직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상대가 빠른데도 공이 내 발 앞으로 오는 순간, 저는 굉장히 즐거울 것 같습니다. 55년의 축구 경험이 0.5초를 만들어내는 순간이니까요.
4. 센터백으로 경기를 ‘읽고 있다’는 즐거움
공이 없는 곳에서도 상대 공격수 위치, 우리 풀백 위치, 미드필더가 비운 공간을 계속 보게 됩니다. 어느 순간 ‘저쪽으로 공이 오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전개되고 내가 미리 그 자리에 가 있을 때가 있죠. 이것은 체력보다 축구를 이해한다는 즐거움에 가깝습니다.
5. 젊은 동료들이 나를 전력으로 인정해주는 것
이것도 꽤 클 것 같습니다. 62세라서 배려해서 뛰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형님이 뒤에 있으면 괜찮아”, “센터는 형님이 봐주세요”라는 식으로 한 명의 선수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나이 때문에 주어지는 자리가 아니라 실력 때문에 주어지는 자리라는 차이가 큽니다.
6. 60대 축구, 결정적인 한 번을 끊어냈을 때의 쾌감

골을 넣는 것 못지않게 센터백에게는 이런 순간이 있죠. 상대가 완벽하게 침투했고 골키퍼와 거의 1대1이 될 상황에서 마지막 순간에 발 하나를 집어넣어 공을 빼내는 것. 저는 골보다 이런 수비 하나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7. 100분 가까운 경기를 끝내고도 내가 멀쩡하다는 만족감
25분 × 4경기면 약 100분입니다. 그것도 젊은 선수들과 부딪치면서요. 마지막 경기를 끝내고 숨을 고르면서 ‘오늘도 네 게임 다 뛰었네’라고 느끼는 순간에는 몸이 아직 내 의지를 따라준다는 기쁨이 있을 것 같습니다.
8. 경문FC라는 서로 다른 세대 안에 내가 있다는 즐거움
경문FC는 20대부터 60대까지 함께 뛰는 팀입니다. 사회에서는 20대와 60대가 동등한 조건에서 무언가를 같이 하는 일이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축구장에서는 “62세의 누구”가 아니라 같은 팀의 센터백이 됩니다. 세대를 지워버리는 축구의 힘이죠.
9. 경기가 끝난 뒤 장면을 되짚어보는 즐거움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때 내가 한 발 먼저 들어가길 잘했어”, “저 친구가 빠르긴 정말 빠르더라”, “두 번째 경기 그 패스는 좋았는데…” 하고 되새기는 시간입니다. 축구는 100분 하지만 그날의 좋은 수비 하나는 하루 종일 남기도 합니다.
10. ‘다음 주에도 나는 뛴다’는 기대감
결국 가장 오래가는 즐거움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한 경기의 승패보다 내 삶 속에 아직 축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경기에 또 젊은 공격수가 달려올 것이고, 나는 다시 센터백 자리에 서게 됩니다.
마무리
경기 후의 결과가 골을 거의 안 먹거나, 2골 이내로 막거나, 그것도 내 실수는 거의 없을 때,
‘내가 62세인데도 잘한다’는 자랑보다 더 깊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센터백에게 가장 큰 만족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상대 공격수가 슛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돌아가 버리고, 위험한 장면 자체가 생기지 않고, 그래서 관중에게는 특별히 기억되는 장면조차 없는 경기. 그런데 나는 압니다. 내가 두 걸음 먼저 움직였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에게 인정받는 것 보다 나 자신을 믿게 될 때.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좋은 센터백은 사건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일어날 사건을 미리 지워버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축구의 즐거움도 달라졌는지 모릅니다. 예전에는 공을 따라 뛰었다면 지금은 공이 오기 전에 움직입니다. 몸이 조금씩 느려지는 대신 오래 뛰어온 시간이 그 자리를 채워줍니다.
아마 그게 62세에 센터백으로 뛰는 축구에서 꽤 근사한 즐거움일 겁니다.






